에스프레소는 흔히 “커피의 심장”으로 불리운다. 30초 동안 추출된 30cc의 검은 액체와 그 위를 덮은 호랑이 가죽 색의 크레마. 알면 알 수록 깊고 매혹적인 에스프레소의 이미지와는 달리, 에스프레소에 대한 일반의 오해는 깊기만 하다.
- “야, 왠 한약을 마시냐..”
- “왠 엑기스. 홍삼 원액이냐?”
- “왜 원자재를 마시고 그래..”
에스프레소를 생각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는 “쓰다/독하다/텁텁하다/카페인이 많다” 등 대부분 부정적인 이미지들 뿐이다. 나 또한 5-6년 전만 해도 주변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지인들은 본 적도 없었거니와, 커피숍 메뉴에 왜 원자재(설탕, 시럽 등처럼)의 이름을 거명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 글에서는 에스프레소를 더 즐겁게 마시는데 유익한 몇가지 상식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다 읽고 난 후에는 에스프레소에 대한 갖가지 오해들이 풀려 있기를 기대해본다.
에스프레소(espresso)=express
에스프레소는 빠르다는 뜻의 이탈리어에서 왔다(영어의 express를 생각하면 쉽다). 여기서 빠르다는 뜻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1) 재빨리 추출한다
모카포트던, 에스프레소 머신이건, 에스프레소의 경우 증기압을 이용하여 25-30초의 시간 내에 추출한다.1
2) 재빨리 음용한다
다른 커피처럼 서빙 후 천천히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에스프레소 위의 크레마가 사라지기 전에 음용을 완료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에스프레소를 종이컵에 테이크아웃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마시는 것은 에스프레소에 대한 모독이라 할 수 있다. 차라리 뜨거운 물을 부어 아메리카노로 변절하게 하는 편이 낫겠다.
호랑이 밸트, 크레마
잘 추출된 에스프레소 위에는 황금색을 띈 기름막, 크레마(Crema, creme이란 의미)가 생긴다. 추출시간이 너무 짧으면 색이 옅고 바로 사라지며, 반대로 너무 긴 경우에는 짙은 갈색을 띄게 된다. 25-30초 정도의 적당한 추출시간과 더불어 적당한 분쇄정도/신선도 등 다양한 조건이 만족되었을 때에만 타이거밸트(tiger belt)라고 불리우는 갈색 문양을 가진 크레마를 얻을 수 있다.
크레마의 있고 없음이 에스프레소의 좋고 나쁨의 전부를 가늠하지는 않지만, 두툼하고 오래 유지되는 크레마는 (많은 경우) 잘 뽑힌 에스프레소를 판별할 수 있게 하는 좋은 가늠자가 된다.
에스프레소 제대로 마시기
그렇다면 에스프레소를 제대로 만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방법들을 정리해보았다.
1) 제대로된 바리스타에 의한(혹은 제대로된 기계로부터) 커피 추출
에스프레소가 써요, 셔요,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 이유는 대체로 제대로된 바리스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남 인근에서는 압구정 현대백화점 인근의 허형만 커피집의 에스프레소를 추천한다.
집에서 제대로 마시고 싶다면 (우선은) 네스프레소머신을 추천한다.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할 때만큼의 개성을 발휘할 수는 없겠지만, “일정한 맛”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쓸만한 머신 가격 대비)”에 만날 수 있다.
2) 데마타쎄를 준비한다
두터운 바디감의 중후한 맛을 지닌 에스프레소는 두꺼운 데미타쎄에 마셔야 제 격. 데미타쎄가 없다면 차라리 에스프레소 마시는 일을 포기하자.
Lavazza Demitasse>> 데미타쎄를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가이드: http://coffeebreak.tistory.com/21
3) 설탕을 한 스푼 섞는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에스프레소는 '쓴 원액'으로 알려져있는 반면, 에스프레소의 본 고장 이탈리아에서는 설탕 없이 마시는 사람은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설탕을 타서 마시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이쯤에서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는데 에스프레소에 섞는 설탕은 쓴 맛을 상쇄하기 위한 단 맛이 아니다. 오히려 쓴 맛을 돋우기 위한 단 맛이며, 내 경험으로는 설탕을 통해 에스프레소의 쓴 맛은 비로소 완성된다.
4) 빨리 마신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빨리 마신다. 보통 3-4번 정도에 걸쳐 모두 마시라고 하는데, 그 횟수야 취향에 맡길 일이다. 하지만, 크레마가 다 걷혀버린 미지근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만큼 맥빠지는 일도 없다.
5) 남은 설탕 즐기기
에스프레소를 모두 마신 후, 데마타쎄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커피 설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취향에 따라 즐긴다. 단 너무 굳기 전에 떠먹도록 하자.
여기까지 간단히 살펴보았고, 추출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동안 일어나는 오감 작동의 이야기들은 아래 글을 참고하자.
>> 에스프레소 오감 작동법: http://coffeebreak.tistory.com/23
에스프레소를 마시니 잠이 안와요?
에스프레소는 마치 카페인만으로 구성된 것처럼 느껴지지만(그래서인지 왠지 카페인은 검은색일 것만 같다), 사실 핸드드립 커피나 인스턴트 커피에 비해 카페인의 양이 적다. 그 이유는 핸드드립에 비해 추출 시간이 짧고(2분 vs 30초), 인스턴트 커피와는 달리 (주로)아라비카 종을 사용하기 때문. 다른 비교로, 박카스 한 잔의 카페인 함유량은 30mg, 에스프레소 싱글 샷에 함유된 카페인은 10mg 내외이다. 평소 카페인에 민감한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에스프레소를 마셔서 잠이 안 온다면 99% 플라시보 효과라고 볼 수 있겠다.
에스프레소 우회 진입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프레소를 곧바로 시작하기 두려운(?) 분들에게 아래 메뉴를 추천해본다.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 음료들 중, 에스프레소에 최소한의 첨가물들만을 추가하는 음료들이 있다. 아래 메뉴 모두, 별다방/콩다방 등의 커피전문점들에서는 언제든 주문하여 즐길 수 있는 메뉴들이다.
1) 단맛을 싫어한다면
에스프레소 마끼아또(Espresso Macchiato)로 시작해보자. 에스프레소 위에 우유거품을 얹은 것으로 해머처럼 강한 에스프레소에 부드러움을 더해준다.
2) 단맛도 괜찮다면
에스프레소 꼰 판나(Espresso con Panna)도 좋다. 에스프레소 위에 휘핑크림을 얹은 것으로, 카페 모카와 결별하면서 떨쳐버릴 수 있었던 단 맛에 대한 집착을 되살아 나게 할 정도의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음료이다.

이제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가?
// 위 사진의 출처는 Lavazza 사진 빼고 모두 flickr foto under CC license
- 모카포트의 경우 달구고 끓이는 시간은 제외하였다. [본문으로]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기사가 있다. 고양이 배설물에 섞여 나온 커피가 무척 비싸다는 가십성 기사들.
이름도 이상한, 코피 루왁(Kopi Luwak)은 인도네시아에 서식하는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 섞여 나온 그린빈(근데 정말 녹색일까?)을 씻어 만든 것으로, 고양이의 침과 위액 등을 통해 일종의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독특한 맛과 향을 갖게 된다고 한다.
처음 신문기사를 보고 사내 커피 동호회에서 직접 사 마셔보기 위해 업체를 수소문하여 직접 통화를 해봤다. 하지만 100g에 40만원에 육박하는 엽기적인 가격(아라비카 원두가 보통 8천원 가량이니 50배) 덕에 아직 경험하지 못한 원두 중 하나이다.
물론, 이 그림을 본 이후로는 가격에 대한 아쉬움은 깨끗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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